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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의 씨름>

이 시대의 씨름에 관한 자료로 볼 수 있는 기록으로는 두 종류가 있다. 중국쪽 기록으로서 "후한서"와 우리쪽 자료로서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이다.
후한서를 보면 중국의 한나라 왕은, 부여의 왕이 자기 나라를 방문했을 때 환영 행사로서 북치고 피리불고 각저희를 하게 했다. 이 각저희가 씨름과 유사하다. 위 그림은 그 당시의 각저다. 이 그림은 1957년 중국과학원 고고학연구소에서 발굴한 개성장 4호 무덤에서 씨름하는 장면이 투각된 동패로 두 개가 발견된 것이다. 동패는 죽은 사람의 허리 양쪽 가장자리에 각각 1개씩 높여져 있었는데 아마도 허리띠에 박아놓은 장식품으로 여겨진다. 전국시대(BC 476~BC 221) 유물로 추정된다.
띠를 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오늘날의 우리 씨름과 비슷하다. 나라들간에, 왕들의 방문 환영 행사로서 각저가 행하여 졌다는 것은 서로의 관심과 상당한 이해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 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거룩하고 신성한 장소인 신소도에서 행하는 제사 예식으로서 여러가지 기예를 시범하는 종목으로 "씰흠"을 말하고 있다. 이 "씰흠"이 씨름이 아닌가 한다. 삼한시대와 상고시대의 구별은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시대구분이다.
상고시대는 역사적 쟁점이 되어 있고, 삼한시대는 씨름 연구가들이 씨름의 발생시대로 보고 있기 때문에 구분하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