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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씨름>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비하여 조선시대에는 씨름에 관한 자료들이나 그림들이 많다. 이것들은 조선시대 초중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초중기의 씨름에 관한 문헌상의 자료로는 "조선왕조실록"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세종원년(1419) 6월 15일에 태종과 세종은 저자도에 행차하여 중류에 배를 띄우고 종친과 주연을 베풀고 ... 곧 각력희를 강변에서 보았다'
국왕이 강변 모래밭에서 씨름경기를 보고 즐기고 있다. 세종12년(1430) 12월에는 '상총'이라는 스님이 씨름을 하다가 상대인 양복산이 죽었는데, 살인죄에 해당되는데도 불구하고, 죄를 묻지않고 그 경기성을 널리 인정하여 관대히 처분하고 죽은자의 매장비까지 국가에서 주었다고 한다.
명종 15년(1560) 5월 11일에 씨름은 마을 어린이와 유생들이나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궁궐안에서까지 하는 것은 유감이라는 대목도 있고, 춘궁별감 박 천환이 여염집으로 심부름을 가다가 씨름구경을 하게 되었는데 양반 행색을 한 유생이 박천황에게 씨름을 하자고 강요하자, 궁중의 세도를 믿고 상대를 두들겨 패주니 조정에서 두사람에게 벌을 주고 씨름을 못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현종 5년(1664) 5월에 광천 저자도에서 씨름을 하다가 이기지 못하여, 상대를 칼로 찔러 죽이는 사고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들을 볼때 씨름이 일반적으로 매우 성행했으며 승부에 대한 집착이 살인까지 몰고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종 15년에는 씨름을 사헌부에서 금지하는 교지가 내려지기도 했다.
다음으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도 씨름을 했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임진왜란 도중 얼마간의 휴전기간 동안 유일하게 즐긴 놀이로서 군사 뿐만 아니라, 장수들까지도 씨름을 즐기면서 전쟁의 불안과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으며, 또한 군사들로 하여금 자주 씨름을 겨루게 함으로써 훈련의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 보겠다.
' - 선조 27년(1594년 9월 21일) 맑음. 아침에 사정에 나가 앉아 서류를 처결하고 늦게 활을 쏘았다. 장흥, 순천, 충처수사와 종일 이야기하였다. 저물어서 여러 장수가 뛰어 넘기를 하고 또 군사들로 하여금 씨름을 겨루게 했다. 밤이 깊어서야 그만 두었다.
- 선조 28년(1595년 7월 15일) 맑음. 늦게 대청으로 나갔다. 박,신 두 조방장과 방담, 여도, 녹도, 보룡, 결성 두 현감과 이은준 들이 활을 쏘고 술을 먹었다. 경상수사도 와서 같이 이야기 하고 씨름 내기를 시켰다. 정항이 왔다.
- 선조 29년(1596년 4월 23일)흐리다가 늦게 갔다. 아침에 김첨지 경록이 들어왔기 에 일찍 아침을 먹고 나가 앉아 같이 술을 마셨다. 늦게 군중에서 힘센 사람을 뽑아서 씨름을 시켰더니, 성복이란 자가 판을 치므로 상으로 쌀말을 주었다.
- 선조 29년(1596년 5월 5일)맑음. 여러 장수들이 모여 회의하고 그대로 들어가 앉아 위로하는 술잔을 네순배 돌렸다. 몇 순배 돌아간 뒤 경상수사가 씨름을 붙인 결과 낙안 임계형이 일등있다. 밤이 깊도록 즐거이 뛰놀게 했는데 그것은 내 스스로 즐겁자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랫동안 고생하는 장수들의 수고를 덜어 주자는 생각에서 였다.'

조선후기의 씨름에 관한 자료로써 문헌들은 "송경지" "동국세시기" "경도잡지" "해동국지" 등이 있고, 그림으로서는 "단원 김홍도의 씨름그림" "기산의 풍속도" "혜산 유숙의 대쾌도" 등이다.
 
기산의 풍속도
 
기산의 풍속도
 
유숙의 대쾌도

송경이란 개성의 옛 이름이다. 그 지역의 풍속과 민속, 지리등을 기록한 내용 중에서 보면 5월 5일에 여자들은 그네놀이를 하고 남자는 각저, 즉 씨름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5월 5일 단오날에 명절의 놀이이로서씨름경기를 많이 하였는데 사람이 모여 인산 인해를 이루었다 한다.
"동국세시기"에서 동국이란 우리 나라를 의미한다. 세시기란 일년중의 행사를 철에 따라 적어 놓은 책이다.
5월 5일 단오날과 8월 15일 한가위 때 즐겁게 놀면서 각력희, 즉 씨름을 겨루었다하며 씨름의 방법과 기술의 내용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경도잡지란 서울의 풍물과 민속놀이를 기록한 책이다. 이곳에도 씨름에 관한 기록과 종류, 방법, 기술들이 있다. 그 내용이 동구세시기와 비슷하다.
해동죽지라는 책에서 해동이란 우리 나라를 의미한다. 또, 죽지란 풍물, 민속놀이들을 기록한 책이라는 뜻으로 옛 풍속에 서로 부딪쳐 싸워서 승부를 결단하기를 좋아했다. 이것을 씨름이라 하고 적혀 있으며 다음과 같은 시가 실려있다.
"붉은 다리 훨훨 피는 가슴에 넘치고 용기는 구정을 단번에 들기나 할 듯 방초 푸르는 평평한 모래벌판에 성난 소뿔로 비비며 쌍쌍이 달려든다."
씨름하는 장사들의 모습들과 힘의 충돌이 참으로 적절하고 놀랍게 표현된 시다.
조선조 후기에는 씨름이 민중들 사이에 더욱 성행했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풍속도를 보면 한 선수가 들배지기로 상대를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 들배지기 자세와 샅바를 맨 다리를 볼 때 오른(바른) 씨름으로 주고 전라남북도에서 행해진 씨름이다. 한 어린 아이가 엿판을 매고 엿을 파는 모습이 보이고, 씨름판에는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다. 양반, 중인, 농민, 총각, 아이들이 어우러져 씨름 재미에 그들의 얼굴 표정과 구경하며 앉은 자세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해학적이다.
신윤복의 행려풍속도(1813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평양감사 형연도중 부벽루 연회의 씨름, 태평성시도(국립중앙박물관), 백동자 병풍 등 씨름에 관한 그림이 있다.
 
동화사 영산전에 씨름하는 벽화
 
백동자 병풍속의 씨름하는 그림